top of page

「구멍 잣기」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것을 머릿속에서 그려보는 ‘상상’(想像)이라는 말의 어원은 견골상상(見骨想象), 즉 “코끼리를 보기 힘들게 되자 죽은 코끼리의 뼈를 구해, 그림을 그려 산 모습을 떠올려 보곤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1) 고영찬의 연구에도 코끼리의 뼈가 나오는데, 이를 통해 작가가 그리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의 연구에 등장하는 코끼리의 뼈 중 하나는 아프리카 코끼리 골격 3D모델링 이미지로 미케 로스(Mieke Roth)라는 사람이 스미소니언 재단(Smithonian Institution) 웹사이트에서 다운로드 받은 매머드 골격에서 유추하여 제작한 결과물이다.2) 멸종한 동물의 골격을 디지털로 변종 시킨 이 3D 코끼리뼈는 시간과 장소에서 완전히 분리됐고 (혹은 애초에 속해있는 시간과 장소가 없고), 내용이 계속 업데이트될 수 있으며(다시 말해 수정 및 보완이 가능하며), (동물학자인 경우를 제외하고) 언뜻 보아서는 얼마나 정확한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이 기이한 이미지는 여러 시공간에 걸쳐 계속 떠돌아다녀야만했던 혹은 장차 그러한 일을 겪게 될 운명에 처한 코끼리, 팽나무, 수국 등과 함께 또 다른 기이한 시공간을 만들어나간다. 바로 전라남도 신안군 도초도에 조성될 예정이지만 여전히 뿌리는 내리지 못한, 그럼에도 작가에 의해 계속 그 시공간이 업데이트되는 중인 ‘제멋대로인’ 장소⎯‘아일랜드 주토피아(Island Zootopia)’다.3)

고영찬은 그동안 작업을 통해 ‘제멋대로인 장소(unruly place)’4)에 대해 다뤄왔다. 다시 말해, 민속문화재 ‘짐대하나씨’가 사라졌다가 회귀한 동중리 마을이나 프랑스 남부의 폐광된 광산마을 등 지도에서 읽을 수 없고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멋대로인)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재고해보게 만드는 아주 특별한 장소”들을 보여줬다.5) 그러나 그의 작업에서 정말 ‘제멋대로인’ 부분은 바로 그러한 장소를 작가가 ‘상상’해나가는 방식이다.

다시 ‘아일랜드 주토피아’로 돌아가보자. 고영찬의 아카이브 설치 작업 <언홈리 아일랜드 주토피아> (2023)는 지자체에서 신안군의 한 섬에 사파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에 머물고 있는 사업 ‘아일랜드 주토피아’에 대해 ‘상상’한다. 작가는 땅에 발 딛지는 못한 채 둥둥 떠 있기만 한 이 사업과 관련하여, 역사적 기록부터 신문기사, 지역 민속 신화와 토속 민요, 태몽에 대한 주민 인터뷰, 그리고 영화 속 장면 등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는 이미지들과 직접 찍은 사진 등을 통해 그에 대한 구멍을 직조해나간다. 예를 들어, 태종실록에 기록된 유배된 코끼리는 배 위에서 물건처럼 옮겨지는 코끼리를 담은 흑백 사진으로, 이는 다시 영화 라이언킹에 나오는 코끼리 무덤으로 이어지며 인간에 의해 끊임없이 옮겨진 코끼리들에 관해 말하고, 이는 곧 사파리 사업으로 인해 옮겨질 코끼리와 공명한다. 이렇게 작가는 뼈와 뼈 사이에 살을 붙여나가는 것이 아니라, 구멍을 조립한다. 하나의 이야기는 구멍을 통해 다른 이야기로 계속 빠져나가고 흘러나간다. 이러한 구멍은 “직조된 것과 그려진 것, 실
재와 연출의 혼합”이 이뤄지는 곳이자, 이야기가 증식되는 통로이다.6)
이렇게 여러 층위로 증식되어 나가는 이야기는 “현실 속에서 픽션의 생산뿐만 아니라, 픽션을 통한 현실의 생산” 또한 보여준다.7) 계속 계획에만 머물러있는 사파리 사업으로 인해 땅을 잃은 주민들의 이야기는 발매리에서 발견한 물뱀의 생생한 시체 사진으로, 이는 다시 주민 누군가의 물뱀에 대한 태몽으로 제멋대로 이어지며, 현실과 신화의 경계가 흐려진다. 

사파리 사업의 “재배의 몸짓”을 ‘상상’해나가며 작가가 구사하는 전략은 구멍을 다듬어나가는 것으로, 이야기 안뿐 아니라 밖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8) 기존에 주로 영상을 통해 보여줬던 작가는 이번 산수싸리 결과전시에서는 아카이브와 설치 작업을 선택했다. 관객은 태블릿으로 작가가 수놓아 둔 구멍과 통로—링크를 통해 자신만의 구멍을 직조해나갈 수 있다. 더불어 구조물을 만든 방식 역시 재밌는데, 작가는 “흰수염들, 수석과 받침대, 동물의 머리뼈, 호두알, 참을 인(忍)이 새겨진 팔의 문신, 동물이 수놓아진 자개서랍”의 이미지를 협업 관계인 작가 김심정에게 전달했고, 김심정은 이에 따른 조형물을 제작했다.9) 조형물 디자인 곳곳에 담겨있는 시각적 단서들은 아일랜드 주토피아로 갈 수 있는 또 다른 통로이다.
즉, 작가는 결과물을 전적으로 통제하지 않는다. 작가는 우리가 땅에 구멍을 파고 식물을 심어 수확하는 것과 같은 ‘구멍’을 파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작가는 특정한 결과물을 얻기 위해 구멍을 직조하지 않는다. 작가는 “재배를 초월한 생태론자”로서 구멍을 다듬고 이를 통해 관계를 생성한다.
10) 작가가 만든 구멍-관계 속에서 다양한 층위의 혼합과 이탈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그 결과는 “예상할 수도 없고 필연적이지도 않다.”11) 이는 ‘제멋대로’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가 또 어떤 다른 구멍을 자아내 이 아일랜드 주토피아 속 여러 이야기들을 펼쳐나가게 될지 더욱 기대된다.



1) ‘상상’ 네이버 국어사전 그리고 정민, “[정민의 세설신어] [109] 견골상상”, 조선일보, 2011년 6월 9일,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6/09/2011060902530.html.
2) 참조, 고영찬, <언홈리 아일랜드 주토피아>.
3) ‘아일랜드 주토피아’는 전라남도가 추진하다가 좌초된 뒤 신안군이 이어받아 발표한 사업명이다. 참조, 박지훈, “[핫이슈] 부활한 ‘사파리 아일랜드’...전남 관광 부흥 이끌까”, 남도일보, 2020년 11월 9일, https://www.nam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89576.
4) 작가 포트폴리오 참조.
5) Alastair Bonnet, “Unruly  Places” the author’s wesite, https://alastairbonnett.com/unruly-places/.

6) 참조, 히토 슈타이얼, 『진실의 색: 미술 분야의 다큐멘터리즘』, 안규철 옮김, 워크룸프레스, p108.
7) 참조, 슈타이얼, 『진실의 색』, p111.
8) 참조, 빌렘 플루서, 『몸짓들-현상학 시론』, 안규철 옮김, 워크룸프레스, pp. 143-152.
9) <이-음> 세미나 시간에 작가와 나눈 대화 참조.
10) 참조, 플루서, 『몸짓들』, 150.
11) 참조, 플루서, 『몸짓들』, 147.


※본 원고는 산수싸리 이-음 Ver.3 프로그램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글 정수진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