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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주⟫: 모호성으로 번지는 침투」






동굴에 사는 생물들은 대개 눈이 퇴화해 사라진다.1) 완전한 어둠 속에서 시각 대신 다른 감각을 곤두세우며, 시간의 흐름조차 다르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동굴 속 외눈박이 괴물은 특이하게도 ‘눈’을 가지고 있다. 아니, 어쩌면 가져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 괴물에게 잃어버렸거나 닫혀 있던 ‘눈’을 되찾아주었고, 그 눈은 이제 단순한 어둠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상(像)—눈으로 보거나 마음에 그려지는 사물의 형체—을 포착한다.2)

고영찬의 개인전 ⟪탈주⟫는 전작인 아카이브 설치 작업 <언홈리 아일랜드 주토피아> (2023)에서 직조한 여러 구멍들 속으로 더 깊숙히 침투한다. ‘굴다방’의 내부로, ‘이름없는 뼈’ 속으로, 그리고 ‘신자연인’의 몸 안으로. 이처럼 여러 ‘구멍-동굴’로 스며들며 마주하는 것은 바로 외눈박이 괴물의 ‘눈’이다. 폴리페무스(Polyphemus)의 눈은 몽상인지, 공상인지, 혹은 예견인지 알 수 없는 상상의 공간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곳에서 들려오는 ‘우글거리는’ 이야기들은 단일한 결론을 거부한다.3) 대신 어둠과 형상, 그리고 그 경계의 모호함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구멍-통로를 만들어내며 탈주의 움직임을 지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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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박이 괴물의 ‘눈’ 외에 그의 다른 몸은 결코 만날 수 없는 걸까? 굴다방—혹은 전시의 첫 동굴-구멍—에서 처음 마주하는 것은 <외눈박이 괴물의 털> (2024)이다. 시간의 흔적처럼 가늘고 긴, 한 올의 ‘흰’ 털이 놓여 있다. 

완전히 늙어서... 한 올도 남김없이 머리털이 하얗게 세었을 때, 그때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데 … 젊음도 육체도 없이. / 열망할 시간이 더 남지 않았을 때. / 만남 다음으로는 단 하나, 몸을 잃음으로써 완전해질 결별만 남아 있을 때.4)

괴물의 온전한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는다. 단지 이 백발 한 올만이 남겨져 있다.

전시장 깊숙히 들어서면 검푸른 물감이 흩뿌려진 산들 사이로, 검은 언덕으로 향하는 “축 늘어진 코와 팔랑대는 귀를 가진” 어느 짐승의 애달픈 이야기가 낮게 울린다. (<검은 언덕>, 2024) 동굴에서는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만 그의 몸을 느껴야 할지도 모른다.

"길들인 코끼리를 순천부(順天府) 장도(獐島)에 방목(放牧)하는데, 수초(水草)를 먹지 않아 날로 수척(瘦瘠)하여지고,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립니다."5)

외눈박이 괴물은 이 검은 언덕, 섬인지 동굴인지 알 수 없는 그곳에 유배된 코끼리의 환영일까? 목소리의 결마다 외눈박이 괴물의 형상이 희미하게 그려진다. 

 

<바다위의 에덴> (2024) 에서는 외눈박이 괴물의 몸이 '이름 없는 뼈'로 투영된다. 이로써, ‘견골상상(見骨想象)’의 미로가 펼쳐진다. 한편, 흰 것과 검은 것 사이, 확신과 의심 사이의 틈새에서 유영하는 회색 덩어리들이 꿈틀거린다. 미래에서 현재로 닿지 못한 채 과거로 흘러간 "아일랜드 주토피아(Island Zootopia)"는 바로 이 아스라한 ‘회색지대’다.

어린 날, 싱그러운 팔에 참을 인(忍)자를 문신으로 새겼던 한 남성의 몸 안으로 침투하면, 신안군의 한 섬에 조성될 계획되었으나 실현되지 못한 사파리 사업—‘아일랜드 주토피아’가 드러난다. 뿌리를 내리지 못한 섬은 작가의 ‘상상’ 속에서 계속 확장되는 흐릿한 시공간이다. 바다 위에 둥둥 떠있는 이 섬에는 '신자연인'이 살고 있다.

3D 모델링된 회색 덩어리들은 불연속적으로 깨지고 흩어지며 그 존재를 드러낸다. 이는 몽상인지, 공상인지, 혹은 미래의 한 단면인지 알 수 없다. 신자연인은 자연으로 돌아가 기체조를 하고 돌로 짱돌찌개를 끓이며, 백발이 되기 전 가졌던 ‘열망할 시간’을 되찾으려는 염원을 품고 있다.6) 그러나 그의 미래 역시 ‘아일랜드 주토피아’와 같은 운명인 것일까?

이 회색 덩어리가 단순히 상상의 파편만은 아님을 보여주는 단서는 <신자연인> (2024)의 사진에서 찾을 수 있다. 쑥이 비염을 낫게 한다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코를 막고 있는 ‘신자연인’의 모습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흐린다. 그는 미래를 꿈꾸면서도 과거를 상기시키는 위치에 남아 있다. 작가는 묻는다.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의 신체에서 온전함을 느끼지 못할 때, 우리는 그것을 주변으로 채우려는 것이 아닐까?”7) 확신과 의심 사이에서 답을 내리지 않은 채, 신자연인은 여전히 회색지대를 유영한다.

외눈박이 괴물과 신자연인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진다. 흰 털로 돌아가 보자.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는 신자연인의 백발일까? 아니면 괴물의 자취일까? 외눈박이 괴물은 곧 어느 짐승이며, 또 신자연인이기도 한 것일까? 파고들수록, 혹은 침투할수록, 오히려 모호함은 더 짙어진다. 구멍-동굴은 또 다른 탈주의 통로를 열어놓는다. 이야기는 계속 늘어나고, 다시 그 구멍을 엮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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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놀라게 하고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은 숭고함으로 이어진다. 광활한 평야는 바다처럼 놀랍지 않으며, 고요한 바다는 거친 바다만큼 놀랍지 않다. 모호함은 공포를 증폭시킨다. … 명료함은 설득이 필요할 때는 유용하지만, 감동을 원할 때는 쓸모가 없다. 어떤 형태의 명료함도 열정을 약화시킨다. 시인은 영원, 무한, 광대함, 시간, 공간, 신성, 무덤, 갈기, 지옥, 모호한 천국, 깊은 바다, 모호한 숲, 천둥, 구름을 찢는 번개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어두워져라... 이 모든 것에는 설명할 수 없는 공포와 웅장함, 그리고 모호함이 깃들어 있다.8)

<바다 위의 에덴>에는 사실 회색빛만 가득한 것이 아니다. 두 채널 모두 회색 톤의 덩어리를 붉은 빛이 감싸고 있다. 작가는 붉은 빛에 관해 꺄따필의 환대의 색으로 설명한다.9) 어둡고 모호해 두려운 구멍-동굴 속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은 바로 이 붉은 빛에 있다. 붉은 빛과 함께, 시인으로서 고영찬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1) 참조, 조홍섭, “캄캄한 동굴 속 눈 잃은 물고기의 하루는 47시간,” 2011년 9월 15일,

https://www.hani.co.kr/arti/m_special/m_hanispecial/496234.html.
2) “상(像),” 네이버 국어사전.
3) 폴리페무스는 호메로스(Homer)의 오디세이(The Odyssey)에 등장하는 포세이돈의 아들이자 사이클롭스(Cyclopes)—눈이 하나 달린 거인—중 하나이다. 그의 이름은 “많은”을 뜻하는 “폴리(poly)”와 “목소리” 또는 “소문”을 뜻하는 “페무스(phemus)”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폴리페무스라는 이름은 “목소리가 많은” 또는 “말이 많은”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고영찬의 작업과 연계해 흥미로운 점은 폴리페무스가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섬의 거주자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참조, Rhianna Padman, “Polyphemus: Who Was the Cyclops That Was Tricked by Odysseus?,” The Collector, uploaded Dec 29, 2023, https://www.thecollector.com/polyphemus-cyclops-odyssseus/, 또한, 헤겔에 대한 이해가 있는 독자를 위해 덧붙이자면, 여기서 ‘우글거리는’이라는 표현은 작가가 서문에서 인용한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개념에서 비롯되었다. 바슐라르의 ‘우글거리는 이미지(swarming image)’는 끊임없이 증식하고 변화하며, 다수에서 하나로 귀결되는 헤겔의 변증법적 체계에 반대하는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참조, Gaston Bachelard, Earth and Reveries of Will: An Essay On the Imagination of Matter (Dallas: Dallas Institute of Humanities and Culture, 2002), 48-49.
4) 한강, 『흰』, 문학동네, 2018, 91.
5) 참조, <언홈리 아일랜드 주토피아>, 2023.

6) 참조, <언홈리 아일랜드 주토피아>, 2023.
7) 참조, <언홈리 아일랜드 주토피아>, 2023.
8) Murray Krieger, Ekphrasis: the illusion of the natural sign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2), 101-102.
9) 참조, 전시서문.












  

글 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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